어느 날
오빠가 길을 걷다 버려진 액자 하나를 보았습니다.
표구가 되어 있던 작품이었는데
빛이 드는 쪽은 색이 많이 바래 있었고
여기저기 상해서가 아니라
얼룩이 져서 버려진 액자였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발걸음이 멈췄다고 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니
종이는 이미 많이 약해져 있었고
군데군데 얼룩이 번져 있었습니다.
오래 두지 못할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작품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글은
무위당 선생님의 그림과 글씨였습니다.
버려진 액자에서
작품을 조심스럽게 떼어냈습니다.
이미 한 번 표구가 되어 있었던 작품이라
더 신중해야 했습니다.
종이를 해치지 않도록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풀어내고
다시 손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종이를 정리하고
손상된 부분을 보강할 작품이 아닌
다시 처음부터 표구를 해야 했습니다.
떼낸 작품을 다시 처음부터 배접을 하고 초배를 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을 하는 오빠를 보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친구의 산방에 걸려 있던
무위당 선생님의 액자 하나.
그 작품은 크게 손상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표구 방식이
오빠의 눈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오빠는 오랜 시간
무위당 선생님의 작품을 표구해 왔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시간까지 제자로 남아있던 오빠는
지금도 선생님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직도 울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랜 시간 이 일을 해온 오빠는
작품을 아는 시간,
종이를 다루는 시간,
그 모든 시간이 쌓여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액자 역시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손상 때문이 아니라
더 보기 좋게,
더 오래 남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표구를 다시 해도 되냐 물은 후
표구사로 가져와 손을 보았습니다.
선생님과의 작품이기에
더 단정하게, 더 편안하게 보이도록
다시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빠의 표구 인생은
어느덧 60년을 넘어섰습니다.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작품을 만져왔지만
이렇게 다시 손을 대는 순간에는
늘 같은 마음이 됩니다.
모든 것을
처음처럼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오래 남게 할 수는 있습니다.
버려졌던 작품 하나와
다시 손을 보게 된 작품 하나.
이유는 달랐지만
그 안에는 같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라질 수도 있었던 시간을
조금 더 이어주는 일.
그날의 작업은
그것에 가까웠습니다.
표구사와 공방에서는
이런 작업도 합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것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