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도구들은 오빠가 오랜 시간 표구를 배우고,
서울에서의 시간을 지나 원주에 자리를 잡으며
함께해 온 것들입니다.
표구사 한쪽에는 오래된 풀통이 있습니다.
이 풀통은 제가 공방을 열기 전부터 있었고,
오빠의 손을 거쳐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약 45년의 시간을 버텨온 도구입니다.
겉은 닳고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풀을 쑤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날의 날씨와 종이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달라집니다.
오빠는 늘 그 미묘한 차이를 손으로 기억하며
같은 농도의 풀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풀통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감각을 담고 있는 도구입니다.
칼 또한 오빠의 것입니다.
날은 수없이 갈아졌고
손잡이는 오랜 시간 손에 쥐어지며
깊은 색으로 변했습니다.
이 칼은 많은 종이를 지나왔고
수많은 작업의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새 칼보다 더 손에 익고
더 정확한 이유는
아마도 오빠의 손이 오래 머물렀기 때문일 것입니다.
표구는 손으로 하는 일이지만
그 손의 시간은 도구에 남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도구를 쉽게 버릴 수 없습니다.
쓸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오빠는 여전히 그 풀통에 풀을 풀고
칼은 가끔씩만 종이를 자릅니다.
대체로 무게가 덜 한 칼을 사용하는데 두께가 두껍거나 여러 장을 잘라야 할 땐
지금도 그 칼을 사용합니다.
조금 느린 일,
서두르지 않는 고요함으로 이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